프로젝트 헤일메리 감상완료 필 로드 & 크리스토퍼 밀러
SF영화라는 것부터 호기심 작품이었던 프로젝트 헤일메리. (영화를 보기 전 여러 일로 반골 심리가 들었던 것과 별개로.) 시작할 땐 인터스텔라 느낌이려나 했는데 꽤 감상이 달랐다. 여러 의미로 우주 영화 중에 가장 다정한 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영화 중반부터 했다. 보통 SF영화 하면 어려운 과학 용어들이 쏟아져나와서 그걸 흡수하는 도중에도 장면을 놓치기 십상인데 굉장히 쉽게 설명해주는데다 회상 연출을 반복하며 이해를 돕는다. 생물학과 외계 생물체를 중심으로 펼쳐지고 그 부분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내 웃음 포인트가 많고 즐거웠다. 그레이스의 주 호흡 원소로 이루어진 통로를 만든 상냥한 로키가, 생물을 품는 자연을 모티브로 디자인 된 이유도 대충 짐작이 된다-사실무근-. 개인적으로 귀신이나 미신 등의 신이란 신은 안 믿어도 외계 생명체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입장으로서 인간 형태가 아닌 로키의 등장은 반갑고 좋았다. 영화의 구조 뿐만 아니라 극 중 스토리와 인물도 따뜻하다. 라이언 고슬링이 연기한 주인공 그레이스는 과학계에서 따돌려지던 별종으로, 별난 일이 생긴 지구를 구하고 사람들을 돕기 위해 힘을 보탠다. 용기를 강조하는 이야기였고, 내가 보아온 그레이스는 선했기 때문에 이어지는 흐름에선 자의로 우주에 나온 계기를 보여줄 것이리라 예상했다. (야오가 용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주는 사람이 있었을 뿐이라고 했어서… 그런 전개일 줄은….) 주인공이 강제로 우주에 보내져 자살 프로젝트를 해내야하는 이야기는 무겁기도 하고 가혹하기도 했으니 아니길 바란 것 같다. 다정한 사람이 다정한 외계생물체를 만나 교감하고 우정을 느끼고 서로를 구하기 위해 위험한 산소에 뛰어들거나 모르는 행성에 갈 각오를 다지는 과정이 슬프고 기특해서 보는 내내 줄줄 울었다. 절정에 치닫으며 로키의 앞에서 그레이스가 죽지 않길 손 모으고 기도했으나 되려 로키야 살아라 하고 염불 외야되는 게 골이 너무 아팠지만ㅋㅋ SF식 신파겠거니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파好) 외로운 우주에서 둘이 외롭지 않길 너무 바랐다. 그레이스가 보내준 무인 비틀즈 세포로 혹한이던 겨울에도 먹을 옥수수가 자랄테고 로키가 만들어준 유사 지구에서 베이비 로키들을 가르치며 그레이스도 행복할테니 이보다 해피엔딩일 수 있나 싶다. 이렇게까지 행복하게 끝나니까 꿈같고 가짜 결말 같을 정도로. SF영화에서 누구 하나 죽지 않고 끝나진 않지 않는가. 근데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그걸 해준다. (야오, 일류키나:?) 그레이스는 로키와 내가 본 인간 중에 가장 용감한 인간이었고 로키는 그레이스와 내가 본 에리디언 중에 가장 용감한 에리디언이었을 것이다.
+) 솔직히 난 그레이스가 '인류의 운명이 달려있다는 부담감을 느껴서 마지못해 받아들임', '스트라트에게 앙심을 품어서 지구를 구할 세포를 보내주지 않음'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용기있다고 생각한다.
++) 우주선의 디자인 또한 인터스텔라의 테서랙트 공간을 떠올리게 했다.
+++) 적막을 너무 잘 쓰더라. 아무 소리도 넣지 않는 연출 콤 생길 것 같음.
++++) 로키 움직이는거 보자마자 어…? 베이비요다(그로구)향이 난다. 라고 생각했는데 진짜였음. CG가 아니라 모형이라더라.
#좋아하는 장면
1. 보드카 마시면서 드러누운 그레이스. 전체적으로 그레이스의 코디와 영화 소품이 원색을 많이 써서 이쁘다. 보통 우주 영화는 흑과 백이잖아. 전 알록달록한 게 좋아요.
2. ET마냥 유리벽 두드리다가 가리킨 거라고 쿠사리 먹는 그레이스. 영화 무게 강약중강약 잘해서 좋아요. 많이 웃었어.
3. 지구 문화 즐기는 로키와 그레이스. 메이트 얘기하는 것도 너무 친구 같아서 기쁜데 슬프다. 이광수가 되…. 타우메바 채취하고 나서 파티할 때 꾸미고 온 로키한테 고깔모자 씌워주니까 모자 쪽으로 몸 착 붙인 거 너무 귀여웠어요.
4. 자기가 6년 늦게 집 가고 연료 줄 테니까 그레이스는 죽지 않게 고친다고 하는 로키. 다 포기한 척 했던 그레이스가 얼마나 듣고 싶던 말이었을까요. 다른 에리디언들 죽을 때마다 원인도 모르고 가슴 찢어졌을 로키 생각하고 나도 가슴 찢어짐. 포옹을 처음 해본 아기 외계생물 안아줘야돼.
5. 그레이스가 추는 춤을 따라하는 로키. 후반부에 헤어질 때 다시 춰버려서 오열따 했습니다. 나 이별이 필요하다는 건 알지만 이별이 싫다.
6. 에리디언은 잘 때 옆에서 지켜봐준다고 하고 그레이스 위에서 자는 로키. 둘 사이에 이런 저런 교감 장치가 많았던 것 같은데 (초 카구야히메 손가락 사인 같은) 결국 전부 복선 회수처럼 수미상관을 이뤄서 안 울기 힘들었음. 로키 다치고 잠들기 전에 자기가 지켜봐주겠다고 하는 그레이스랑 정말 약속 지켜서 깬 로키 기특해요. 이땐 허그 할 때 바로 그냥 몸 붙여준 것도 감동.
7. 엔진 정지를 하면 무중력 상태가 되는데 중력을 만들기 위해 원심분리기 원리를 이용함. 로키의 우주선이 헤일메리호를 붙잡고 돌게 되는데 그레이스가 로키한테 네가 만든 중력 마음에 든다고 한 거. 나중에 로키가 자기 행성에 그레이스만을 위해 테라포밍 해준 공간도 마음에 들었겠지….
8. 헤일메리호가 지구 갈 수 있는 수리가 끝났다고 했을 때 그레이스가 생각해봐도 되냐고 한 거. 그레이스는 지구 회상 장면에서도 생각해봐도 되냐는 식의 말을 자주 했던 것 같은데 스트라트와 로키의 대답이 대조 됨. 스트라트는 3시간 안에 끝내라는 둥 얘기했고, 로키는 오래오래 생각하라고 했으니까. 그레이스는 로키의 행성에 남을 거란 암시를 해준 부분이라 마음이 좋았어요.
9. 프로젝트 헤일메리 진행 전 대원들이 모여서 술 마시고 할 때 그레이스가 굉장히 심란해했고 반면에 스트라트는 사이코패스처럼 비추어졌는데, 그때 스트라트가 부른 노래가 해리 스타일스 Sign of the Times였음. 상황 생각하면 가사가 처절하기도 하고 응원을 하는 것 같기도 하잖아요. 본인도 마냥 편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노래했던 게 아닐까, 싶고… 더 말해봤자 기만이 되는 입장이라 중간에 그만둔 건가 싶기도 하고… 산 사람 사지로 몰아넣고 무슨 심정이었을까.
-. 아 뭔가 지구인에 대한 내 마음가짐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정하지 못한 채 영화가 끝났어요. 과학이 만드는 소수의 희생은 너무 어렵고 슬프다. 정답인지 오답인지 틀리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적어낸 답인지 그냥 처참하네요. 책도 봐야겠다.
*궁금한 것
로키는 그레이스가 찾던 물 없이도 살아가는 생명체인가. 그레이스가 별종이 된 이유는 결국 이것 때문인데 아스트로파지 샘플이 그렇다는 건 증명 실패를 했고… 뭔가 영화에서 대놓고 언급되지가 않아서 궁금. 바다 수온 얘기 하는 거 보면 물에 익숙해 보이지 않았으니까+바위 모티브인 것 같은데 바위는 물에 닿으면 이끼가 끼니까. 물론 과학적으로 물이 완벽하게 필요하지 않은 생명체는 없을 거라고 하지만(물을 이루는 가장 큰 원소는 수소인데 우주에서 가장 흔함.) 그냥 기다고 하면 낭만 있고 둘이 운명 같아서 제 기분이 좋네요.
돌과 사는 남자 좋음! 좋음! 좋음! 평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