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이 감상완료 크리스토퍼 놀란
러닝 타임이 길어서인가 보는 동안 생각을 되게 많이 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프헤메랑 비슷한 수준이었던 듯. 결국엔 신화를 영상화 시켜서 보여준 것에 그치겠지만, 오디세이라는 단어 뜻이 여정인만큼 이래저래 오디세우스가 겪은 상황들을 흥미롭게 구현했다고 생각했다. 포세이돈의 아들인 거인이 사람을 쥐어 뜯어먹는 장면, 이질적인 비명을 지른 갑옷꼬마의 뒤 성인으로 보이는 거구의 갑옷들과 움직이는 숲속에서 싸우는 장면, 키르케가 사람을 돼지로 만드는 장면, 죽은 시논과 아가멤논을 만나 유언을 듣는 장면, 절벽에서 뻗어나온 입들이 장수들을 잡아간 장면 등 여러 비현실적인 존재들이 그야말로 마법 같았다. (왜 그 많은 신화적인 장면 중에서 대표하는 포스터랑 홍보한 예고영상의 주 포인트로 갑옷 장면을 썼는진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COC나 SCP재단 같은 비과학적인 호러를 좋아하기 때문에 정~말 재밌게 봤다. 그 부분에서 공포감만 조성하는 게 아니라 전쟁이 가미된 현실 세계사처럼 풀어냈다는 점도!!! 굿. 오디세우스의 부대가 굉장히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나와서 희생과 헌신이 되게 당연한 느낌인가 싶었는데, 분노에 사로잡혀 화살을 날리기도 하고 누군가를 불신하게 되고 원망하기도 하는 등 인간적인 면이 보여서 좋았다. 결국 그런 점들이 겹겹이 쌓여서 오디세우스의 딜레마에 살을 붙이는 것 같음. 집에 돌아가느니 마느니 하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 자체로 갈등을 겪고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음. 물리적으로 집에 가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엔 전부다 마음가짐의 문제였고. 전쟁을 겪은 뒤에 귀향도 하지 못할 정도의 괴로운 내면을 갖게 된 영웅은 현대 참전 군인들의 재해석이니까.
스토리라인에서 어느정도 반전이 있는 것도 좋았다. 제우스의 법을 무시하고 암흑기를 가져오는 바다에서 온 이방인이 오디세우스라는 점이라든가 아테나에 대한 부분이라든가. 영화를 보면서 특히 요정 칼립소가 하는 대사를 들으며 불교 생각이 많이 났다. 나는 종교를 가진다면 불교이리라 생각할 정도로 마음을 비우고 살아가는 것에 강한 긍정을 표현하는데, 이 영화의 맥락이 그것과 비슷했다.
별점을 깎은 이유는 역시... 동물 학대가 트리거인 사람에게 버거운 장면이 많이 나왔다는 점이겠죠... 약육강식은 괜찮은데 강아지 발로 차는 장면이랑 거름에 던져둔 장면이 너무 마음이 안 좋았어 ㄱ-...
그리고 놀란이란 감독을 정말 좋아하지만 이번에 연출한 전투 장면들이 성에 차지 않았네요. 뭐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거야 싶고 정신 없고, 죽은 건지 뭔지도 분간이 안되고. 결정적인 장면들도 좀 더 웅장하게 해줄 순 없었을까. 노렸다면 박수쳐주고 싶지만 극적인 느낌은 떨어졌다.
캐릭터가 플랫하다거나 대사가 현대적이라는 평도 많은데 이건 뭐, ㅋㅋㅋㅋㅋㅋㅋ동의는 해. 그래도 볼륨이 크니까 그렇게 하는 게 이야기 전달 면에서 더 쉬울 거라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님.
이래저래 떠들었지만 저는 영화를 통해 놀란이 보낸 메세지가 마음에 들었던 거겠죠. 쉼 없이 싸운 주인공의 여정과는 상반되게 얽매이지 않은 채 물 흐르듯이 살아갈 것을 권유하고 다른 이의 삶도 환대하고 존중하라는.
싸우지 말고, 통제하려 하지 말고 살아남아. 믿음을 갖고, 자신을 던져.
사람에게서 신을 찾지 마라, 결국 실망하게 될 테니.